국민대학교 사이버역사관

기록물

  • 새해 연두사(1951.01.02)
  • 해공 신익희 1951 제헌절 기념사
    (1951.07.17)
  • 삼일절 33주년 기념사 (1952.03.01)
  • 해공 신익희 라디오 정견발표 (1956.04)
  • 해공 신익희 한강 백사장 연설
    (1956.05.03)
  • 대법원장 김병로 추도사 (1956.05.23)
  • 제3회 국회 부의장 곽상훈 추도사
    (1956.05.23)
  • 장례식 실황중계(1956.05.23)

연설문

돌아보건대 본 대학은 내가 일생을 통하여 과거 40년 동안 우리 국민 전체가 일제의 압박 아래 신음한 것은 우리 국민이 몰지각한 데서 비롯한 결과임을 통감하고 이 나라의 중견 국민을 양성해야겠다고
일구월심으로 생각한 그 큰 이상을 갖고 세운 것입니다. 목숨이 붙어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이 정도나마, 고매한 학식을 갖춘 교수 여러분과 구지욕(求知慾)에 불타는 총명호학(聰明好學)의 생도 여러분과
함께 국민대학 첫 입학생을 맞아 개강식을 갖게 되니 여러분과 같이 일편 감개무량하고 일편 감축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큰 이상을 품고 세운 국민대학의 건학목표를 대충 대별하자면,
첫째는 깊이 학문을 연찬하여 최고 수준에 도달함으로써 대학 본래 사명인 진리탐구에 있어서 이 나라의 최고 권위가 되도록 할 것.
둘째는 이 진리의 탐구는 한 개의 상아탑을 연상케 하는 데 기울어지지 말고, 실지 생활에 대한 지식을 준비하여 국가건설의 참된 일군이 되게 할 것.
셋째는 모든 학문은 실제를 존중하여 공막한 이상의 추구에만 그치지 말고 반드시 실천궁행으로써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복지에 공헌하도록 할 것 등을 건학의 정신으로 정하고 이 학교를 창설한 것입니다.

여러 신입생 제군이 보는 바와 같이 새로 출발하는 처지라고는 하지만 교실과 비품ㆍ책상ㆍ걸상까지도 모두 보인학교재단의 호의와 후의로 빌린 것입니다. 이런 간구한 형편 속에 강의를 시작하지만
우리 교직원과 학생들이 이 신생 대학을 중심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정의(情誼)를 두터웁게 하고, 새 희망을 전망하면서 부식(不息)의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쌓아 주기 바라는 바입니다.
이 정신, 이 목적을 한문 글자로 표현하면 ‘이교위가(以校爲家)'라 합니다.

이 학교를 제 집같이 하라는 말인데 자기 집에서 아버지·어머니께 효도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ㆍ딸을 귀엽게 여기며 교육하고 존경하고 화목하고 애틋하게 대하며, 너그럽게 베풀고 하듯이,
자기가 다니고 배움을 얻는 학교를 제 가정과 같이 생각하고 동료간에는 형제와 같이 우애로 대하고, 교수에게는 형님이나 아버님ㆍ어머님을 공경하고 존경하듯이 대하면 이 학교의 교운(校運)은 욱일승천(旭日昇天)의 세(勢)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같지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같지 못하다 하였읍니다. 이 말은 일반적 정세와 입지적 조건이 아무리 불리하여도 그 당국(當局)한 사람들이 잘 화목해서 힘과 마음을 함께 하면 어떠한 간난(艱難)이라도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계명(誡名)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 국민대학의 교훈의 하나로
이 넉자·이교위가(以校爲家)'를 제창(提唱)하는 바입니다.

만당(晩唐)한 귀빈여러분, 신사숙녀여러분! 오늘 국민대학 제4회 졸업식 거행함에 임하에 공사다망하신 중에 이처럼 많이 참석하여 본 대학 및 졸업생을 위하여 축하하여 주시니 깊이 감사를 들이는 동시에 애오라지 본 대학의 현장을 여러분께 피력하려 합니다. 돌아 보건데 본 대학은 내가 해외에서 돌아온 후 이 나라의 튼튼한 중견국민을 양성하기 위하여 큰 이상을 품고 세웠던 것입니다.

그 건학의 목표로는
첫째는 깊이 학문을 연구하여 최고수준에 도달함으로써 대학 본래 사명인 진리를 탐구에 있어서 이 나라의 최고 권위가 되도록 할 것.
둘째는 이 진리의 탐구는 한 개의 상아탑을 연상케 하는데 기우려지지 말고 실지생활에 대한 지식을 준비하여 국가건설의 참된 역군이 되게 할 것.
셋째는 모든 학문은 실재를 존중하여 공막(空漠)한 이상의 추구에만 그치지 말고 반드시 실천궁행(實踐躬行)로써 국리민복에 공헌하도록 할 것.
등을 정하고 창설하였던 것입니다. 그동안 경영면에 있어서 기다(幾多)의 파란(波瀾)이 없지 않아 몇 번이나 행로의 어려움을 탄식케 하였으나 다행이 최근의 경영에 진췌(盡)하는데 동지들의 헌신노력
(獻身努力)으로 특히 정이사장 거석선생의 난능가귀(難能可貴)한 희생적공소(犧牲的貢所)로 재단등기 대학재인가를 마치어 비록 넉넉지는 못할지라도 위선 장래의 경영면에는 안전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또한 피력하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이번에 졸업하고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 여러분에게 몇 마디 부탁을 하려합니다.
먼저 여러분이 피난 중에서도 오히려 모든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꾸준히 학업을 닦어서 오늘의 졸업을 보게된것을 경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나는 첫째로 여러분은 그 금후에 불휴의 노력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이 비록 이 나라의 최고학부에서 소정의 학과를 마치었다할지라도 그것은 간신히 요원한 학문의 범부의 그 일부면을 엿보았을 뿐이니 오늘의 졸업으로써 자만하지 말고 더욱 연찬(硏鑽)
하여 대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졸업은 필경 여러분이 금후 일생을 통하여 더욱 연찬하는 방식의 일부를 배운데 지나지 않을것입니다. 오늘의 졸업은 장래에 학문을 통하여 또는 실지사회를 통하여 더욱 높은단계로 발전하려는 한 개의 계기로 또는 한 개의 소전환기로 삼어서 공작(工作)에서 학습하고 학습하여 공자하야 일층자자(一層孜孜)히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여러분은 대학을 마치었다하여
결코 그것을 과대평가하는 우월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각 개인의 개성의 존엄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실사회에서 생활할 때에 여러분의 학식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이 여러분들과는 그 길을 달리 하였을지라도 그 얻은바 견식과 능력이 있음을 충분히 존중하고 경청하여, 협동하는 것만이 적게는 여러분 자신의 좋은 처세술이 되는
동시에 크게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정상적 발전에 공헌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여러분은 금후 실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지키어 도의(道義)의 앙양에 힘쓰기 바랍니다. 예의염치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가진바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생리적 본능에만 의하여 사는 것은 어떠한 다른 동물에게도 있지만은 오직 인류만은 이것을 억제하고 조절하여 높은 도덕의 향기로써 사회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예의염치는 국지일유(國之日維)라 하였고 이것은 불후의 진리이지만 나는 더욱 이 말을 강조하여 『예의염치(禮義廉恥)는 인지사유(人之四維)』라하여 먼저 개인의 인격완성에도 기본요소임을 지적하고 권장하는 바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회유의 전쟁 및 이에 따르는 전재와 생활고 또는 일부 악질배들의 이기주의의 발호로 도덕의 저하와 사회일부의 부패는 도도(滔滔)히 그 독류(獨流)를 범람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국민대학의 학풍을 이사회에 반영시키어 일말의 청신제(淸新劑)로서 이 사회를 갱신(更新)하신다면 이것은 비단 우리대학의 광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이 나라 이 사회의 행(幸)이 될 것입니다.

돌아 보건대 본 대학은 내가 해외로부터 돌아온 후 창설하고 그 경영에 참획(參劃)하여 전후 칠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특히 금년졸업식에는 본 대학의 기초가 안정되어 더욱 발전의 일로(一路)로
매진하게 되는 것은 경영자, 교수, 학생이 다함께 기뻐 할 바입니다. 오늘 모교를 나가는 여러분 졸업생은 우리대학의 영역을 좌우하고 우리사회의 흥체(興替)를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하여
이교위가(以校爲家)의 교훈으로 그 책임의 중대함을 자각하고 더욱 책려정진(策勵精進)하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국민대학은 내가 해외 망명으로부터 고국에 돌아온 후에 관계한 학원이다. 나는 이 국민대학이 무엇보다 우리 국가에 유력한 인재를 양성하는 학부가 되기를 기대하고 직무공홀(職務忽)한 중에도
편극(片隙)을 내이어 협조하려는 것이다.
대개 최고학부는 진리의 남구에 전심하는 곳임으로 우리 국민대학의 교단에 선 교수 제씨 중에도 순수한 진리탐구에 치중할 것이요 국가를 위한 인재양성에 치중한다는 나의 주장에 대하여는
석연치 못한 이가 있을른지 모른다는 것도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러나 비록 시대는 달르다 할지라도 어느 나라에서든지 한 시대를 창조하는데는 반드시 그 시대를 창조하는 교육이 선행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동린(東隣) 일본에서 들어 본다하면 소위 일본의 시민사회형성의 한 전환기를 지은 명치유신의 일꾼이 길전송음(吉田松陰)의 송하숙(松下塾)에서 배양되었으며 그 뒤에 그 국가운영을 위한
인재양성을 위하여는 복택유길(福澤諭吉)의 경응의숙(慶應義塾)과 대외중신(大重信)의 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이 많은 공헌을 한 것이다.
다시 예를 서린(西隣) 중국에서 들어본다면 변법자강(變法自强)을 주장하던 강유위의 만목초당(萬木草堂)은 중국에서 신국민운동의 초래를 헤치었고 장개석의 황포군관학교(黃浦軍官學校)는
중국봉건군벌을 소정하고 북벌을 완성하는 싹이 되었으며 비록 지그 당면의 적으로 소련의 앞재비가 되어 동아(東亞)의 신환(臣患)이 되었다 할지라도 중공의 모택동(毛澤東)도 그의 청년기에
한구(漢口)와 북경에서 분주(奔走)한 소위 『자수대학』이 그 화근을 심어 놓은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교육은 한 국가로 보아서도 선악문 그 기초가 되는 것이다. 나는 국민대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돌 수 있는 대로 이 신흥조국(新興祖國)의 기초가 될 인재가 많이 나기를 바라는 것이니 즉 국사(國士)의 양성이다.예로부터 [사(士)는 국지원기(國之元氣)이라 하여 국사의 지도와 수범(垂範)만이
기우러지는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을 말하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국내의 정세를 동찰하건데 밖으로 외국의 침약이 있고 안으로 나라를 좀먹는 무리가 횡행하여 형세(形勢) 급업한 바 있으니 누구나 뜻있는 이로는 심우(深憂)를
금하지 못할 것이다. 국민대학이 이제 피난지 부산으로부터 4년 만에 서울에 돌아와서 개강하니 가르치는 이 배우는 이가 함께 감개전심(感慨轉深)할 것이다. 퇴창파벽(頹窓破壁)에서 개강하니
우리는 물질적으로 보아서는 극히 빈약할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국사를 양성하고 또한 양성되어 이 나라를 구하게 된다는 정열로써 대한다면 부족한 물질의 빈약도 정신력으로써 극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염결(公正廉潔)』은 우리의 처신행사에 표어가 되어야할 『정성단결(精誠團結)』 곧 우리가 구국을 위하야 직혀나갈 의지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국민대학에서 뿐 아니라 어떠한
교육자회합이나 학생의 회합에서든지 『독서불망구국(讀書不忘救國)』을 고조한 바이어니와 여기서도 또한번 강의하는 교육자나 공부하는 학생이나 한결간이 『불망구국(不忘救國)』의 4자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인류사의 진전은 그 전도에 안개가 자욱하야 어떠한 학자나 평론가라도 그 전도(前途)를 정확히 예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 고조하는 국민주의도 인류사의
진정에 따라 많은 변모가 있을른지 모른다. 그러나 현하(現下) 당면한 이 나라 이 민족의 앞에는 견강(堅强)하고 안정하고 균형된 통일국가의 완성만이 그 제일의 과제로 놓인 것으로 믿고 금후의
국민대학에서 나오는 이는 참으로 국사다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모교의 지위를 이 나라 안에서 높이는 동시에 이 국민의 지위를 전 세계적으로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以校爲家”의 精神强調-艱難을 克服하야 建設的 人才養成,-1955 

『國民大學報』 弟3號를 내이게 되었다. 휴전(休戰)이요 종전(終戰)이 아니며, 통일의 희망이 희박한 중(中)에 환도하야 퇴창파벽(頹窓破壁)을 수리하고, 다시 모교의 터에서 개강 한지도 어언 3년에
걸치게 되었다. 사제가 함께 모교를 중심으로 옛 정의를 도타웁게 하고, 새 희망을 전망하면서 불식의 형설지공을 쌓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국난이 오히려 폐이지 못하고 국보가 더욱 간난(艱難)한 이때인지라, 그러한 환경 속에서 국민대학만이 순탄하게 나가지 못함도 어느 의미로는 당연할는지도 모르나, 우리 대학의 교보(校步)가 또한 간난(艱難)한 사정이 허다히 있었고, 이 모든 간난을 중심으로 유상·무상의 말이 혹은 과장되고 혹은 왜곡되어 世에 유포되어 안으로 교내동지들의 상심을 끼치고 밖으로 전국에 널려 있는 교우들의 염려를 번거롭게 하였으며, 필경은 진리의 탐구로써 사명을 삼는 교수동지 여러분의 관심까지 일으키게 함은 스스로 돌아보아 그 설립 이래, 일비의 힘이나마 써오던 부망의 불덕으로 인하고 예리, 정비에 힘써서
교내동지, 교우 제씨 및 모교를 애호하는 강호제현(江湖諸賢)의 방정(芳情)에 보답하는 바이다.

이 교운이 간난(艱難)한 때를 위하야 나는 다시 한번 종래의 주장하던·이교위가(以校爲家)'의 정신을 강조하는 바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같지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
(人和)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일반적 정세와 입지적 조건이 아무리 불리하여도 그 당국한 사람들이 잘 화애협동(和衷協同)하면 이기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현하 국정이 아모리 난하고
주위가 아모리 혼란하여도 국민대학의 관계자들이 한 가족과 같이 일절의 과거를 씻어버리고, 小我의 집착함이 없이 순전히 학교의 장래와 고유한 전통정신을 살리면 모든 간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도 교육의 본의는 그 정신에 있는 것이요, 외관의 화미(華美)에 있지 아니함을 역설하여온 바이요, 또 그 정신은 구원한 국민의 백년대계에 두어야 할 것임으로 조고마한 암영이나 물질의
빈약으로써 그 전도를 염려하여서는 안된다. 그것이 얼마나 고난 내지 불쾌가 있었다 할지라도 성서의 일절을 빌어 말하면 과거에 대하야는·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 지내고', 내일의 신생을 위하야 정대하고 광명한 길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일시의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 고난을 폐이기 위하야 편파하거나 의존하는 생각으로 목전을 호도(糊塗)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구차한 현실미봉의 방법은 첫째로는 우리가 몽침간(夢寢間)에도 잊어서는 안 될 독립자존의 고귀한 정신을 모독하는 것이요,
둘째는 목적의 적은 성과를 얻는다 할지라도 후일에는 마치 사막에 지은 누각과 같이 풍우에 붕괴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소기(所期)한 바인 본 대학의 정신과는 다른 방면으로 가게 되지 아니할까
염려하는 때문이다. 이렇게 개관하건대 현하의 세태는 자못 혼란한 바 있어서 우리 교내의 사정도 그것을 반영할 듯한 감이 있다.
이것은 어떤 개인을 지적하여 그 책임을 물으려 함이 아니요, 일반적 사회정세의 반영으로 알고 그 갈피를 찾어서 가족적 분위기 아래 화애협동(和衷協同)으로 해결에 노력하면 반듯이 정경대도(正經大道)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막연하나마 크게는 우리 국가 전체로 보아서나 나 개인으로 보아서나 쉬지 않는 정상적 노력은 반듯이 그 성과를 거둘 날이 있을 것이요, 정사(正邪)의 판단이
자명하게 될 것이니 고인의 이른바·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믿으려 하는 바이다.
금후 본 대학의 전도는 모든 분규와 곤란을 극복하고, 참된 진리탐구의 학부로서 더욱 유위한 인재를 배양하야 신국가 건설의 초석이 되게 할 것을 믿으면서, 스승과 배우는 이들의 일치단성(一致丹誠)으로
일층의 면려가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